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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2020

권력이란 무엇인가

by goyooha 2020.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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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한병철

역자: 김남시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출판날짜: 2016. 06. 29.

페이지: 200p

장르: 철학일반

 

2020. 03. 26. ~ 2020. 03. 29. 총 4일간 독서

 

서평

한병철의 책들은 생각을 넓혀주는 효과가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개념을 여러 철학자들의 이론을 인용해 익숙하게 접근하게 해주고, 그 이론들에서부터 신선한 관점을 이끌어낸다. 이번 <권력이란 무엇인가>도 역시 그랬다. 한국인이라면 머릿 속에 '권력=폭력,억압'이라는 등식이 무의식 중에 자리잡고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런 편견을 완전히 비틀어 권력의 새로운 효과와 정의를 말하고 있다. 물론, 저자의 생각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경직된 사고를 풀어주는 사유에서의 웜업 역할을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군데군데 인용된(번역이 된) 저서들도 같이 읽는다면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메모

6p

물론 권력은 자신에 대한 저항을 진압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저항은 이미 그 권력이 약화되는 순간에 일어난다. 권력자가 무자비한 폭력을 필요로 한다면, 그의 권력 기반은 이미 허약해져 있는 것이다. 그에 반해 강력한 권력자는 권력을 펼치기 위해 폭력에 의존하지 않는다. 폭력과 혼란은 포괄적인 권력이 부재하는 곳에서, 권력의 담지자여야 할 정치적 혹은 사회적 심급과 기관이 붕괴하는 곳에서 확산되는 것이다.

7p
힐러리 클린턴이 말한 "스마트 파워"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고 다른 사람들의 욕구와 요구에 응답하는 권력이다.
(중략)
권력은 근본적으로 독백적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권력의 결정적 약점이 있다. 권력자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는 대화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권력에 종속되어 있는 자들만이, 즉 복종하고 있는 자들만이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다.

17p
"내가 해야만 한다"가 아니라 "내가 할 것이다"라는 말에는 더 강한 권력이 작용하고 있다. 마음속으로 "아니요"라고 하는 것보다 권력자에 공감하는 "네"가 더 강한 권력에 대한 응답이다.

42p
타자에게 특정 행동을 강요하기 위해 사용되는 물리적 폭력도 비록 폭력적인 방식이기는 하지만 행위와 관련된 결정을 실현시킨다는 점에서는 하나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에 포함된다. 그러한 커뮤니케이션적 맥락을 결여하면 폭력은 벌거벗겨진다. 이렇게 벌거벗은 상태에서 생겨나는 폭력은 섬뜩함이나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그 어떤 커뮤니케이션적 지향성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타자를 괴롭히거나 무의미하게 죽이는 행위는 바로 이런 벌거벗은, 의미가 상실된, 그래서 포르노그래피적인 폭력이다. (중략) 여기서는 복종 또한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복종한다는 것은 이미 하나의 커뮤니케이션 행위인데, 여기서는 타자의 행동, 그의 의지, 나아가 그의 자유와 존엄을 완전히 해소시키려는 시도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벌거벗은 폭력의 목표는 타자성을 철저하게 제거하는 것이다.

51p
무엇인가가 어떤 의미를 갖는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중략) 이런 단순한 우연성이, 다시 말해 우연하게 옆에 있게 된 것이 특정한 형상을 통해 구조화될 때 비로소 의미가 생겨난다. A, B, C가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 관계 맺을 때, 다시 말해 그것들이 어떤 구조나 맥락 속에, 서로를 관련시키는 관계 연속체에 편입될 때, 하나의 의미가 생겨난다.

73p
아비투스(Habitus)는 한 사회 집단의 경향이나 관습을 지칭한다. 그것은 특정한 지배 질서를 관철시키는 데 기여하는 가치나 지각 형태를 내면화함으로써 생겨난다. 반성 이전에 작동하면서 신체적으로 작용하는 아비투스는 현존하는 지배 질서로의 편입을 가능하게 하는 습관의 자동주의를 산출해낸다. (중략) 우리가 사회적 위치 때문에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을 우리 스스로의 선택이라고 여기게 만드는 것도 이것이다. 해야만 하는 것이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취향이라고 양식화된다." 이를 통해 "희생자들이 사회적으로 부여된 운명에 스스로를 봉헌하고 희생하게 만드는 아모르 파티(amor fati), 즉 운명에 대한 사랑"이 생겨난다.

90p
무력은 타자에게 내맡겨졌다는 것이며, 타자 속에서 자신을 상실한다는 것이다. 권력이란 그와 반대로 타자에게서도 자기 자신으로 존재한다는 것, 다시 말해 자유롭다는 것이다. 따라서 쾌락의 강도는 유희의 자유로움이나 다양성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쾌락은 권력과 더불어 자라나는 자아의 연속성에서 기인한다.

98p
따라서 내면성의 마지막 정점은 사유이다. 사유하지 않는 한 인간은 자유롭지 않다. 그럴 경우 그는 타자에 연루되어 있기 때문이다.

99p
정신의 권력이란 폭력과는 완전히 구별되며, 타자를 폭력적으로 위압하거나 파괴하지 않고, 타자 속에서 이미 즉자인 것이 현상하게 하는 것이라고. 또한 사유는 외치며 선포하는 대신 환하게 밝혀주는 것이라고. 밝게 빛나는 빛으로부터는 어떠한 폭력도 나오지 않는다. 정신의 빛은 내적으로 자신과 접촉하면서, 그렇게 비춰진 것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특별한 빛이다. 그것은 눈을 가지고 있다.

104p
헤겔의 유명한 말에 따르면, 정신은 "절대적 내적 분열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할 때에만 진리를" 얻는다. 정신의 권력은 타자가 일으켜놓은 부정적 긴장감을 관통하는 자아의 연속성을 산출해낸다. 정신은 매개가 결핍되어 있을 경우에만 타자와 충돌한다. 그 때문에 매개가 빈곤하거나 결핍되면 제한적이고 신경증적인 정신이 생겨 난다.

108p
인간은 자기를 장악하는 자를 내면화하고 자기 정체성의 뼈대로 삼으면서 그에게 복종한다. 타자의 "네"는 스스로 복종하는 자의 정체성을 처음으로 구성한다는 점에서 원초적 복종인 것이다. 여기에서 권력은 억압적이거나 폭력적이지 않다. 그것은 정체성을, 나아가 '영혼'을 비로소 생겨나게 한다. 매개가 부족하거나 아예 부족할 경우 장악은 폭력의 모습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 헤겔이라면 이러한 폭력적 장악에 관해 개념이 없는, 아무 매개 없이 일어나는 장악이라고 말할 것이다.

168p
"독재적 권력"이란 실제로는 폭력에 다름 아니다. 폭력에는 매개 능력이 없다. 그에 반해 권력은 타인의 영혼에 깃들고, 자신이 황폐해지지 않기 위해 타인들을 포괄해야만 한다. 권력에는 매개에 대한 배려가 내재한다. 권력은 결코 맹목적이지 않다. 그에 반해 매개를 모르는 독재는 권력의 토대를 흔들리게 한다.

176p
이러한 정열은 조용하고, 어두운 화염처럼 내면에 머무르며, 그곳에서 뜨겁고 열을 내는 모든 것을 모으면서, 그러한 정열의 소유자를 외관상으로는 냉정하고 무관심한 사람으로 보이게 하며, 그의 얼굴에 무감동한 표정을 새겨넣는다. (중략) 그러나 그것은 사교적이고 인기에 영합하는 사람들의 이웃사랑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다. 그것은 부드럽고 관조적이며 평정한 친절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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