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한강
출판사: 창비
출판날짜: 2007. 10. 30.
페이지: 247p
장르: 한국문학
2018. 01. 15. ~ 2018. 01. 24. 총 10일간 독서
서평
어렵다. 내 독해력의 한계를 맛보게 하는 작품. 한번으로는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꿈과 현실을 왔다갔다하며 서술한 것은 어려움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소년이 온다>에서도 느꼈지만 한강은 정말 신기하게 글을 쓴다. 충격적인 장면을 노골적으로 묘사하지 않으면서도 눈앞에 그려질만큼 충분히 표현한다. 나중에 한번 더 읽는 걸로 마무리하자.
메모
9p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 길지도 짧지도 않은 단발머리, 각질이 일어난 노르스름한 피부, 외꺼풀 눈에 약간 튀어나온 광대뼈, 개성있어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한 무채색의 옷차림. 가장 단순한 디자인의 검은 구두를 신고 그녀는 내가 기다리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힘있지도, 가냘프지도 않은 걸음걸이로.
14p
나는 혼자 어두운 부엌에 남아 그녀의 흰 뒷모습을 삼킨 방문을 바라보았다.
20p
뜻밖이었다. 그녀에게 저토록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인 구석이 있었다니. 저렇게 비이성적인 여자였다니.
22p
나는 모르고 있었다. 저 여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26p
설령 그녀의 상태가 진심으로 의심스러웠다 해도, 흔히 말하는 상담이나 치료 따위를 고려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것들도 하나의 질환일 뿐이지, 흠이 아니야'라고 얘기하고 다녔다 한들 어디까지나 남의 일에 한해서였다.
51p
아내의 손목에서 분수처럼 피가 솟구쳤다. 흰 접시 위로 붉은 피가 비처럼 쏟아졌다.
55p
의심을 품은 시선들이 나를 흘끔거렸다. 구역질이 났다. 이 모든 상황이 징그러웠다.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 놀람이나 당혹감보다 강하게, 아내에 대한 혐오감을 느꼈다.
76p
자신은 정상적인 인간인가. 또는 제법 도덕적인 인간인가.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는 강한 인간인가. 확고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 질문들의 답을 그는 더이상 안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80p
좋은 여자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아내는 언제나 좋은 여자였다. 좋기만 한 것이 오히려 답답하게 느껴지는, 그런 여자였다.
83p
단 한 순간에 그는 지쳤고, 삶이 넌더리났고, 삶을 담은 모든 것들을 견딜 수 없었다.
162p
말하자면, 그의 열정을 믿을 수 없었다. 그의 열정어린 작품들과, 수족관에 갇힌 물고기 같은 그의 일상 사이에는 결코 동일인이라고 부를 수 없을 간격이 분명하게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175p
영혜의 낡은 검은 스웨터에서 희미한 나프탈렌 냄새가 났다. 그녀가 대답하지 않자, 영혜는 한번 더 언니, 하고 속삭였다.
언니. …… 세상의 나무들은 모두 형제 같아.
197p
문득 이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다는 느낌이 드는 것에 그녀는 놀랐다. 사실이었다. 그녀는 살아본 적이 없었다. 기억할 수 있는 오래 전의 어린시절부터, 다만 견뎌왔을 뿐이었다.
198p
봄이 가고 여름이 오는 것을 그녀는 묵묵히 바라보았다. 화장품을 사들고 나가는 여자들의 옷차림이 차츰 화려하고 짧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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