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이기호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출판날짜: 2013. 04. 15.
페이지: 404p
장르: 한국문학
2017. 10. 15. ~ 2017. 10. 18. 총 4일간 독서
서평
보일듯 말듯 문학의 묘미를 보여주는 책.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펼쳐나감으로써 오히려 의도를 직접적이고 적극적으로 보여준다. 알쏭달쏭하며 읽는 재미가 있으나 난해할 수도 있다.
메모
[밀수록 다시 가까워지는]
66p
그 때 당시엔 매일매일 프라이드에 시동을 걸면서 오늘이 마지막일 거야, 오늘이 마지막일 거야, 라고 중얼거렸으니까. 그도 아니면 어떤 반발심리같은 게 있었을지도 모른다. 뒤로는 못 가는 자동차이니, 어쨌든 앞으로는 최대한 멀리, 최대한 빨리 가보자는 ……
(중략)
달리다 보니까 돌아갈 곳을 아예 잊어버린 게 아닐까, 하는 …… 일종의 당혹감 같은 것 말이다.
72p
-아니, 아니, 나 말고, 암 말이야, 암. 하필 다 늙은 몸에 들어와서…… 야 야, 늙은 몸에 들어온 암은 기력이 없어서 잘 자라지도 못한단다. 왜 거 덕적골 덕형이 할머니도 여든 넷인가에 암에 걸렸는데 아흔 다섯에 갔잖아. 암만 죽어난거지.
할머니는 이야기를 하는 도중 낄낄, 웃기까지 했는데, 나는 그게 나를 위해 일부러 그러는 것만 같아 잠깐 울컥하기도 했다.
92p
나는 잠깐 차에서 내려, 벚꽃이 우수수 달라붙어있는 프라이드를 휴대전화 카메라에 담았는데, 그러나 이내 지워버리고 말았다. 어쩐지 꼭 상여같다는, 이별의 수순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김 박사는 누구인가?]
121p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일, 그것만큼 자기 자신을 치유하는 데 좋은 일은 없을 겁니다.
122p
물론 엄마의 성격이 어떻고, 혈액형이 무엇이고,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그런 것 쯤이야 잘 알고 있지요. 하지만 그건 한 사람을 안다고 할 수 없는 거잖아요? 그건 누구나 알 수 있는 거잖아요? 누구나 알 수 없는 어떤 것, 그러니까 맨홀 뚜껑 옆에 핀 잡초를 볼 때 엄마는 어떤 생각이 드는지, 15층이나 17층처럼 높은 건물 유리창 앞에 서면 엄마는 어떤 기분이 드는지, 맑은 날 갑작스러운 바람이 불어와 머리칼을 흔들고 지나갈 때 엄마는 누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지, 그런 것에 대해선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거예요.
[화라지송침]
261p
그러니…… 이건 뭐,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 마음까지도 괜스레 엠보싱만큼이나 우둘투둘해질 수밖에……
262p
나는 그걸 단순히 번개를 처음 본 아이의 두려움, 비행기를 처음 탄 노인의 막막함과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265p
나는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짐작과 진실 사이엔 그리 큰 강물이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69p
내일은 일을 나가야지, 딸 아이를 위해서라도 내일은 어떻게든 일을 나가야지 마음을 먹었지만 여인숙 방문 밖 수돗가가 왜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는지, 방 안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 채 마음 속으로만 계속 세수를 하고 면도를 하고 양치를 했다고, 그러다가 또 하루가 그냥 갔다고, 허허, 웃으면서 말하기도 했다. 하마터면 그때 모든 것이 다 끝날 뻔했다는 말도 허허, 웃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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